
"예지정비 모델 하나 만드는 데 2주." 제철소 설비 엔지니어에게는 꽤 일상적인 숫자였다.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 코드를 짜고, 모델을 학습·검증·배포하는 전 과정이 전문가의 손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AWS와 함께 공개한 'InnoPIMS'는 이 숫자를 "2일"로 바꿨다. 비결은 더 좋은 알고리즘이 아니다. AI '에이전트'가 개발 과정 자체를 맡았기 때문이다.
1. InnoPIMS는 무엇인가 — 코딩 없이 모델을 만드는 AI 에이전트
InnoPIMS는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AWS 클라우드와 AI 에이전트 기반으로 개발한 설비 이상예지 모델이다(AWS Summit Seoul 2026에서 EIC기술부 조현영 리더가 소개). 핵심은 단순하다. 설비 고장과 관련된 데이터를 AI 에이전트가 자동으로 분석하고, 현장 엔지니어가 별도의 코딩 없이 이상예지 모델을 직접 만들고 적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숫자로 보면 이렇게 된다. 평균 2주 걸리던 이상예지 모델 개발 기간이 약 2일로, 약 80% 단축됐다(파일럿 운영 실측). 그 바탕에는 포스코의 스마트 설비관리 시스템 PIMS(POSCO Intelligent Maintenance System)가 있다. PIMS를 활용한 설비장애 예방 효과가 쌓이면서 2026년 8월 기준 설비장애로 인한 긴급정비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약 50% 감소했다(출처: 매일경제, 매일신문·경북일보 2026-10-05 보도).
2. 왜 중요한가 — "개발 기간 단축"이 진짜 핵심이 아니다
여기서 한 번 멈춰보자. 2주→2일은 인상적이지만, 진짜 변화는 기간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제조 AI는 "데이터팀이 만들어 현장에 전달"하는 구조였다. 에이전트는 이 흐름을 뒤집는다. 현장을 아는 엔지니어가 직접 모델을 만들고 고치는 구조다.
이게 왜 큰 일인지, 현장에 있어본 사람은 안다. 제조 AI가 현장에서 안 통하는 이유 1순위는 정확도가 아니라 "현장 언어를 모르는 모델"이다. 설비의 이상 징후가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아는 사람은 현장 엔지니지, 데이터팀이 아니다. 도메인 지식과 AI 도구가 같은 사람의 손에 들어오는 순간, 보도에서 언급된 "직원 역량 편차로 인한 품질 유지의 한계"도 함께 풀리기 시작한다.
3. 7년차 현장 관점 — 에이전트가 공장에서 살아남는 조건 3가지
뉴스는 장밋빛이지만, 현장 엔지니어의 눈으로 보면 에이전트가 진짜로 살아남으려면 세 가지가 따라와야 한다.
첫째, 노하우의 자산화. 포스코는 같은 달 '예지정비 고도화 원팀'을 본격 가동했다(포항·광양 설비부문+기술전략실). PIMS 활용 우수사례를 사내망에 등록·공유하고, 우수제안 가이드라인과 보상체계까지 만들었다. 에이전트가 아무리 좋아도 현장의 노하우가 데이터로 쌓이지 않으면, 에이전트는 매번 처음부터 시작하는 셈이다.
둘째, 검증 루프. 에이전트가 만든 모델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검증하는가. 자동으로 만들어진 모델일수록 "왜 이런 판단을 했는지"를 따지는 과정이 빠져서는 안 된다. 모델의 재현성이 무너지면 현장의 신뢰도 함께 무너진다(관련 글: #125 'AI 데모는 됐는데 현장에서 안 되는 이유').
셋째, 권한 설계. 예지정비가 '알려주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조치'까지 가려면, AI에게 어디까지 허용할지를 먼저 정해야 한다. 모델이 자동으로 밸브를 잠그게 할 것인가, 아니면 알람만 울리게 할 것인가. 이 경계 없이 에이전트를 현장에 풀면, 가장 먼저 깨지는 건 기술이 아니라 조직의 신뢰다(관련 글: #145 '공장용 AI 챗봇이 첫 주에 망한 이유 — 프롬프트가 아니라 권한 문제였다').
7년차 현장 엔지니어로서 한 줄 정리하자면, 에이전트 시대의 제조 AI는 더 이상 'AI를 아는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다. 현장을 아는 사람이 AI를 직접 다루는 시대가 왔다.
그래서 뭘 하면 되나. 우리 공정의 이상 징후 데이터를 에이전트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모델보다 데이터 파이프라인이 먼저다(관련 글: #124 '디지털트윈의 진짜 엔진은 3D가 아니라 데이터 수집이다', #126 '예지정비 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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