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장용 AI 챗봇을 처음 현장에 내놨을 때, 가장 많이 틀린 답은 어려운 기술 질문이 아니었다. "라인이 섰다"는 말을 AI는 "생산라인이 완전히 멈췄다"고만 이해했고, 현장은 그 말을 "한 공정이 잠시 대기 중"이라는 뜻으로 쓰고 있었다. 모델은 멀쩡했고 프롬프트도 길었다. 틀린 건 단 하나, 단어의 뜻이었다.
7년차 현장 엔지니어로서, 나는 이제 AI 도입 프로젝트에서 가장 먼저 묻는다. "이 현장에서 이 단어는 정확히 무슨 뜻인가요?" 그 답이 정리되지 않은 곳에서는, 아무리 좋은 모델도 현장의 언어를 못 알아듣는다.
같은 말, 다른 뜻이 현장을 지배한다
현장의 말은 사전의 말과 다르다. "불량" 하나만 봐도, 검사 기준을 넘은 제품인지, 재작업이 가능한 상태인지, 라인에서 이미 분리된 것인지에 따라 대응이 완전히 달라진다. "점검"도 마찬가지다. 어떤 팀은 육안 확인을, 다른 팀은 센서 값 기록까지 포함한 절차를 점검이라 부른다.
AI는 이런 차이를 스스로 알아채지 못한다. 학습 데이터에 있는 일반적인 뜻을 가져오고, 확신에 찬 말투로 틀린 답을 낸다. 현장 사람들은 그 답을 보고 "AI는 현장을 모른다"고 결론내린다. 사실 AI가 몰랐던 건 기술이 아니라, 이 현장만의 말이었다.
용어집은 문서가 아니라 계약이다
그래서 나는 용어집을 "참고 자료"가 아니라 "계약"으로 만든다. 용어 하나마다 세 가지를 적는다. 첫째, 현장에서의 정확한 정의. 둘째, 그 단어가 쓰이는 상황과 쓰이지 않는 상황. 셋째, 그 단어와 연결된 후속 행동. 예를 들어 "라인 정지"라면, 어떤 조건일 때 정지로 부르고, 정지가 선언되면 누가, 무엇을, 어떤 순서로 하는지까지 연결한다.
이렇게 만든 용어집은 AI의 답변 기준이 된다. 모델이 용어를 쓸 때는 용어집의 정의를 따르고, 정의에 없는 말은 함부로 쓰지 않게 한다. 프롬프트에 넣는 문장 한 줄보다, 용어집 한 페이지가 현장의 오해를 훨씬 많이 줄인다.
용어집 만드는 3단계
첫째, 현장에서 실제로 많이 쓰이는 말 30개를 뽑는다. 회의록, 작업지시서, 알람 문구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 기준이다. 둘째, 각 단어마다 현장 담당자 한 명씩 "뜻의 주인"을 정한다. 주인이 없는 정의는 회의 때마다 바뀐다. 셋째, AI 답변에 용어집 정의를 그대로 인용하게 하고, 답이 틀렸을 때는 모델이 아니라 용어집부터 고친다.
이 순서가 중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모델은 계속 바뀌고, 프롬프트도 계속 바뀐다. 하지만 현장의 말이 바뀌는 속도는 훨씬 느리다. 오래 남는 것부터 정리해야 도입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뭘 하면 되나: 이번 주에 현장 용어 10개만 뽑아, 정의와 주인 한 명씩을 적어보자. 그 10개가 정리되는 순간, AI의 답은 눈에 띄게 현장다워진다.
이전 글: 공장용 AI 챗봇 권한 문제(https://developer-archive.tistory.com/145), AI 에이전트의 행동 권한 설계법(https://developer-archive.tistory.com/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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